
피아니스트 김가람의 라벨 이야기
Through My Fingers and Heart

Intro
라벨의 피아노 작품으로만 무대를 채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설렘과 함께 조심스러운 두려움도 찾아왔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 제 테크닉과 음악성의 경계를 다시 한번 넘어서야 하는 여정이 될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기를 파리에서 보낸 저는 자연스럽게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에 매료되었고, 그중에서도 라벨의 섬세하고 우아한 음색은 늘 제 마음을 깊이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고운 결을 청중들과 나눈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기에, 이번 무대는 저에게 하나의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한 명의 작곡가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리사이틀은, 마치 그의 인생이라는 드라마 한 편을 함께 경험하는 느낌을 줍니다. 올해가 라벨의 탄생 150주년이기도 하고,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볼레로’ 뒤에 가려진 그의 다채롭고 아름다운 음악들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사진 속 맑은 두 눈을 바라보며, 그 눈 안에 담겨 있었을 영혼의 이야기들이 궁금했습니다.
작은 체구(153cm)에서 뿜어져 나온 열정적인 창작력, 흔들림 없는 예술적 신념, 그리고 그 너머 순수한 아이 같은 모습들—이 모든 것들이 그의 음악 안에 고스란히 살아 있었습니다.
저는 늘 음악가마다 고유한 사명이 있다고 믿습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스타 연주자가 있는가 하면, 조용히 깊은 울림을 전하는 은둔의 거장도 있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비교적 대중에게 덜 알려진 작곡가와 작품들에 마음이 끌렸고, 그것들을 소개할 때 큰 보람을 느껴왔던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서른 초반까지 학업에 전념할 수 없었던 현실 속에서, 그 시절 채우지 못한 공부를 지금이라도 스스로 채워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반년 넘게 라벨의 음악 속에 머물며 오늘의 무대를 준비하는 동안, 그의 음악과의 만남은 때론 벅차고 때론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천국에서 라벨을 만난다면, 그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어 줄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이 길을 함께 걸어주신 오늘의 관객 여러분, 동료들, 그리고 오푸스 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공연이 여러분께 긴 여운으로 남기를, 그리고 어느 초여름날의 낭만으로 기억되기를 소망합니다.
Ravel's Music and Me
소나틴느
01
Sonatine
1905년, 서른 살의 라벨은 신예 작곡가들의 등용문이라 불리던 로마 대상에 다섯 번째 도전했지만, 또다시 고배를 마셨습니다. 뒤늦게 밝혀진 파리국립음악원 교수들의 편파 심사로 인해 원장이 사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라벨은 그 일에 집착하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해, 오늘 들려드릴 이 곡을 완성합니다.
이 작품의 1악장은 라벨의 절친이자 《Weekly Critical Review》 잡지에 글을 기고하던 친구의 권유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이 잡지에서 주최한 작곡 경연의 규정은 ‘75마디를 넘지 않는 피아노 소나티네의 첫 악장’이었지만, 라벨의 작품은 규정보다 길어 실격 처리되고 맙니다. 단 한 명의 참가자였음에도 말이지요. 그러나 라벨은 이에 굴하지 않고, 2년 뒤 2악장과 3악장을 완성하며 이 곡을 완전한 하나의 소나티네로 탄생시킵니다.
자신을 아껴주던 고뎁스키 부부에게 헌정한 이 곡은, 다음 해 리옹에서 폴 드 레스탕 부인의 손으로 처음 세상에 소개되었고, 이내 파리에서는 가브리엘 그로블레즈의 연주로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라벨 자신도 대중의 반응에 만족했지만, 작품의 난이도에 대해선 걱정이 컸다고 전해집니다. 실제로 그는 1, 2악장은 직접 연주하고 녹음했지만, 고난도의 3악장은 끝내 연주를 포기했다는 일화가 남아 있기도 합니다.
라벨의 마지막 제자였던 피아니스트 페를르무터는 후배 연주자들에게 “이 곡은 기교가 아닌, 우아함과 섬세한 소리를 통해 라벨의 세계를 표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전해집니다.
리사이틀 프로그램에서 첫 곡은 연주자에게 특히 중요합니다. 아무리 연습을 많이 했더라도 무대 위 첫 걸음은 늘 긴장되기 마련이고, 관객이 찬 홀의 음향은 리허설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첫 곡은 연주자가 공연장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돕는 곡으로 선택하게 되죠.
하지만 오늘 첫 곡으로 들려드릴 이 작품은 그렇게 쉽고 편안한 곡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2악장의 미뉴에트는 라벨 특유의 소박하고 단정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어, 들을수록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이어지는 3악장은 경쾌함으로 가득 차 있으며, 마치 오늘 공연 전체를 예고하는 트레일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곡을 통해 우리는 서른 살 청년 라벨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라벨에게 훈장을 수여하려는 움직임은 뒤늦게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미 자유를 향한 여정에 들어선 그에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습니다. 라벨은 예우를 지켜 정중히 그 훈장을 거절했고, 이후에도 한결같이 자신의 내면을 향한 여정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언제나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그 자신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말 ‘아름다움’이란 말은 ‘나다움’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지요. 이 곡 속에 담긴 라벨의 그 ‘나다움’, 그리고 그로부터 피어나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오늘 이 무대를 통해 여러분의 마음에도 조용히 스며들기를 소망합니다.
02
Gaspard de la Nuit
밤의 가스파르
오늘의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매혹적이면서도, 제게는 가장 높은 산처럼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연주자들 사이에서 ‘넘기 힘든 난곡’으로 손꼽히는 곡이라, 언젠가 꼭 도전해보고 싶기도 했고, 때로는 애써 외면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사랑과 고생이 뒤섞인, 고운 정 미운 정 다 든 친구 같은 곡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 작품이 유독 매혹적인 이유는, 밤의 낭만과 어둠의 그림자를 라벨만의 언어로 섬세하고도 강렬하게 그려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알로이시우스 베르트랑의 시집 『밤의 가스파르』를 바탕으로 한 이 음악은, 마치 시의 구절들이 음표로 살아나는 듯한 환상적인 느낌을 줍니다. 밤의 신비와 환상을 주제로 한 수많은 곡들 가운데서도, 이 작품은 단연코 가장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낮보다는 밤을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낮의 분주함과 밝음 속에서는 때로 마음이 소란스러워지지만, 밤의 고요함은 저를 한결 편안하게 감싸줍니다. 특히 달빛이 드리우는 그 묘하고도 신비로운 감정은 참으로 낭만적이죠. 아마도 이 시집의 저자, '가스파르' 또한 그런 밤의 매력에 깊이 사로잡혀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며, 저 역시 그 감성에 이끌려 이 곡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극악의 테크닉을 감수하면서도 이 곡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특히 마지막 3악장 '스카르보'는 마치 한국의 작은 도깨비를 떠올리게 합니다. 자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괴롭히는 장난꾸러기 악동 같다고 할까요. 얄밉고도 조금은 귀엽고, 잠 못 드는 밤이면 ‘오늘은 스카르보가 또 나를 찾아왔구나’ 하며 웃게 되기도 합니다. ‘가스파르’는 라벨의 음악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그리 널리 알려지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음악을 통해 그 이름은 영원히 남게 되었고, 이후 보들레르, 말라르메와 같은 거장 시인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밤의 감성을 사랑하는 낭만주의자라면, 언젠가 꼭 『밤의 가스파르』라는 이 시집을 펼쳐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그 안에는 음악과 시, 그리고 밤의 마법 같은 정서가 가득 담겨 있으니까요.
03
Le tombeau de Couperin
쿠프랭의 무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라벨은 자원입대를 결심합니다. 작은 체구에다 마흔을 앞둔 나이였지만, 그는 트럭 운전병으로 전장에 나섭니다. 음악가가 전쟁터에 나선다는 것은, 다시는 자신의 음악 세계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각오와 다름없었습니다.
다행히 라벨은 살아 돌아왔지만, 그가 가장 의지하던 어머니는 그 사이 세상을 떠났고, 전쟁에서 수많은 친구들을 잃는 아픔도 겪게 됩니다. 깊은 충격과 상실의 슬픔 속에서 무기력에 빠졌던 라벨은, 음악을 통해 마음을 추스르기 시작했고 그렇게 이 작품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이 곡을 여섯 개의 짧은 모음곡으로 구성하여, 전쟁터에서 숨진 친구들에게 하나하나 헌정합니다. 자신의 악보를 필사해주던 친구, 오랜 벗 장 크루피, 화가 들뤼크, 어린 시절을 함께한 고댕 형제, 힘들 때마다 머물던 집의 주인, 동료 피아니스트 마르그리트 롱의 남편까지… 라벨은 그들의 이름을 가슴에 새기며 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처음 이 곡을 접했을 때, 추모곡이라기엔 밝고 경쾌한 춤곡의 형식이 의아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느껴지는 것은, 라벨이 친구들의 죽음을 슬픔으로만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는 진심이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떠나간 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되살려내고, 그들과 나눈 따뜻한 기억을 음악 속에 영원히 머물게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그들의 숨결이 그의 음악 안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기를 바랐던 라벨의 마음을 생각하면, 저절로 숙연해집니다.
이 곡의 제목 속 인물 '쿠프랭'은 프랑스 바로크 음악의 거장으로, ‘한 시대의 영광’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라벨은 그 이름을 빌려,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친구들의 명예로운 죽음을 기리려 했던 듯합니다.
비록 그 깊은 슬픔을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사랑하는 이를 잃은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음악을 준비했습니다. 오늘 이 곡을 듣는 누군가의 마음에도, 조용한 따뜻함으로 다가가기를 소망합니다.
04
La valse
왈츠
이 곡을 처음 만난 건 파리 고등음악원 시절이었습니다. 저와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은사님이 건네주셨지만, 악보를 펼치는 순간 “이건 못 하겠습니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복잡하고 낯선 기호들, 난생 처음 마주한 고난도의 구조는 그야말로 장벽처럼 느껴졌습니다.
유대인이셨던 은사님은 그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음악은 언어와 같단다. 낯설어도 천천히 익히면, 반드시 칠 수 있게 되어 있어”. 그 격려에 힘입어 6개월 가까이 고군분투했고, 마침내 완주해냈습니다.
그 이후로는 마음속으로 ‘이 곡은 이제 그만’ 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는데…. 정확히 20년이 지난 오늘, 다시 이 무대 위에서 이 곡과 재회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어렵지만, 이제는 그때 보이지 않던 것이 조금씩 보이고, 손에 잘 잡히지 않던 테크닉도 조금은 부드러워진 듯합니다. 그 시절, 낯선 악보 앞에서 당황하고 또 포기하고 싶어하던 어린 가람이를 떠올리면, 그래도 이만큼은 자라났다는 마음에 스스로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라벨은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며, 다시 자신을 일으켜 세울 무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 때 러시아의 발레 프로듀서 디아길레프로부터 새로운 발레 음악을 의뢰받고, 라벨은 1906년에 시작해 미완으로 남겨뒀던 왈츠(La Valse)의 스케치를 다시 꺼냅니다. 그렇게 14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 이 곡은 마침내 완성됩니다. 하지만 디아길레프는 이를 발레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며 거절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둘의 인연은 끝내 멀어지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곡은 이후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네 손을 위한 버전으로 다시 태어나며 오히려 더 많은 연주자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볼레로’와 함께 라벨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 음악은 1885년경의 왕실 궁정에서 남녀가 춤을 추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지만, 단순한 빈 왈츠라 하기엔 폭발적인 화성과 강렬한 전개가 어우러져, 듣는 이의 숨을 멎게 합니다. 전통적인 춤곡의 문법을 따르되, 거기에 라벨 특유의 파괴적 상상력을 덧입혀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으로 완성한 것이지요.
이 곡을 오늘 리사이틀의 마지막 곡으로 선정한 이유는, 공연의 끝자락에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넘어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함께 춤추는 장면을 상상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음악이 마법처럼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처럼요.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의 앞날에도, 이 곡의 리듬처럼 벅차고 설레는 순간들이 가득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